관리급여 전환과 1차 진료 모델의 한계 도수치료가 관리급여 체계 안으로 편입되자마자 처방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처방약 배송을 둘러싼 약사회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고, 지역 의료망의 중증 응급 대응력은 이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약화되었습니다. 대학병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원가 바닥에서도 지난 수십 년간 작동하던 단독 개원 문법이 멈춰 서고 있습니다. 최근 부쩍 늘어난 외국인 대상 병원 개원은 이러한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10여 년 전 처음 개원을 준비할 때, 명동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환자를 보던 선배 원장님의 글이 기억납니다. 한마디로 수익 변동성이 극단적이었습니다. 어떤 달은 상상 이상의 매출을 찍었지만, 어떤 날은 진료실을 원장님 혼자 지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20년 만에 돌아온 뜸과 전임상 연구를 바라보는 시선최근 한의원 대상 홍보물에서 거의 20여 년 만에 뜸을 전면에 내세운 치료 시스템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고깃집 환기 덕트를 달고 유행하던 왕뜸 열풍이 지나간 뒤, 뜸은 한동안 급여 진료의 일부로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돌고 돌며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드물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수천 년의 임상 경험을 가진 유효한 치료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왜 뜸인가”에 대한 현대적 해석—특히 분자생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임상 현장의 원장님들 입장에서는 분자생물학이나 전임상 동물실험을 통한 해석이 낯설거나 당장 필요 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환자..
사라진 4만 달러의 환호와 일상으로 스며든 '시스템 이원화' 과거 1인당 GDP 몇만 달러 돌파는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성장의 신화이자 삶의 극적 변화를 알리는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4만 달러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이전과 같은 사회적 환호는 들리지 않습니다. 국민소득 단위가 바뀌는 거대한 변화임에도 대중이 무덤덤한 이유는, 4만 달러 시대가 외형적 성장이 아닌 '시스템 구성의 근본적 재편'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형의 확장은 멈추었지만 우리 삶을 규정하는 제도들은 조용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공공 영역의 재정적 한계와 성장의 정체 속에서, 사회 곳곳은 이미 '기본 생존형 공공 인프라'와 '고비용 민간 프리미엄'으로 나뉘는 잠재적 이원화 체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의료·주거·교육에..
잠자는 공공 데이터를 빠르고 투명하게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국가 데이터 기본법의 연내 시행을 앞두고 관련 부처와 유관 기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번 법안은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데이터를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주요 목적이 있습니다. 특히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고품질 데이터 확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름에 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공공 데이터의 개방 및 활용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주요 정부출연연구원 역시 자체 소유 데이터의 현황을 점검하고 활용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데이터의 자유로운 활용은 비단 최근만의 요구가 아닙니다. 이미 20여 년 전부터 공공 데이터 개방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
지방 대학의 연구실을 지키고 계신 분들이라면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6년 하반기 업무계획’ 속 “실패한 R&D라도 성실함이 인정되면 후속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겉보기에는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선진국형 연구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그럴듯한 슬로건이지만, 현장의 차가운 현실을 아는 이들의 눈에는 이 제도가 다르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지방 기초연구과제 몰아주기 정책의 ‘행정적 면피용 출구’가 아니냐는 의구심입니다.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명확했던 '성실수행' 기준 사실 국가 R&D에서 '성실하게 수행했다면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이른바 성실실패(성실수행 인정) 제도는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부는 이미 201..
전선 뒤의 격전지: 중국 기초과학의 눈부신 부상과 '미병'의 격세지감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미·중 갈등은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되려 이란 다음은 중국과의 갈등일 수 있다는 예측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1도련선에 해당되는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과의 동맹 관계 강화와 같은 가시적인 정치·군사적 긴장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 패권 또한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앞으로 새로운 기술 패권의 각축장이 될 생물학 연구개발 및 신약 산업에서의 패권 전쟁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은 기초연구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라 언론 보도가 잘 되고 있지 않지만, 근 10여 년간 기초과학 분야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단순히..
지하철 풍경이 말해주는 AI 버블의 실체와 닷컴버블과의 차이 OpenAI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소식이 조금씩 들려옵니다. 2023년 무렵 유료로 ChatGPT를 쓰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무료 모델만 이어 써도 그때보다 훨씬 똑똑한 AI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불과 3년도 안 된 사이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이처럼 AI는 점점 똑똑해지고 다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귀에 딱지가 앉아 ‘이 버블도 곧 끝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듯합니다. 모든 기술은 버블을 통과하며 한 단계 발전합니다. 백여 년 전의 라디오와 철도가 그랬고, 20여 년 전의 닷컴버블이 그랬으며, 지금의 AI가 바로 이 단계를 지나고 있습니다. 버블이 없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
인공지능의 역할 중 하나는 그동안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전문 영역의 대체입니다. 이미 프로그램 개발, 글쓰기, 교육은 상당 부분 인공지능이 맡고 있으며, 그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대체할 영역'을 찾기보다 '대체되지 않는 영역'을 찾는 쪽이 더 쉬운 시기가 올지도 모릅니다. 자연히 '이런 영역까지 대체가 된다고?' 싶은 사례가 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의료입니다. 규제의 끝판왕 의료, 인공지능이 뒤집다 의료 분야는 고도의 규제 탓에 스타트업을 비롯한 신규 사업이 극히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신기술이 곧바로 시장에서 검증받는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는 기초연구에서 임상시험, 규제 승인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빠른 평가와 적응력 뿐만 아..
기초 연구 평가인가 지역 발전 정책인가 2026년 상반기 기초연구 선정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늘 그렇듯 연구재단은 금요일 오후, 전화 문의에 가장 적게 시달릴 시간에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연구자들의 기대는 여전히 비슷합니다. “그래도 이만큼 연구했고, 최근 논문도 나갔고, 계획서도 신경 써서 썼으니 하나쯤은 되지 않을까.” 많은 연구팀이 이런 생각으로 결과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 결과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발표 하루 전 정부 보도자료에서도 이미 정책 방향의 단서가 보였습니다. 이번 기초연구 정책의 핵심이 연구 경쟁력 강화라기보다는 지역 균형 확대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이러한 정책 방향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수도권 과제 수는..
교수라는 직업의 확장과 피로 대학의 교수님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의는 기본이고 연구에 심지어 행정까지 도맡아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교수는 강의가 중심이고 연구는 필요에 따라 수행했습니다. 행정은 학장이나 학과장과 같은 보직의 일환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교수 임용은 테뉴어가 기본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테뉴어가 당연한 시대도 아니며, 테뉴어라 할지라도 강의와 연구, 행정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창업을 장려하는 학교라면 사업까지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대학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발표에 따르면 2050년이면 연구팀을 꾸릴 수 있는 대학이 20개 남짓에 불과할 것이라고 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