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불용'의 역사적 관성과 인공지능 시대의 뒤처진 대응
한국은 2024년 기준 연구개발비 131조 원이라는 압도적인 자금을 투입하며 세계 5위권의 R&D 강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수치상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혁신의 농도는 여전히 옅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안정적인 진입'과 '추격형 모델'에 최적화된 구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는 최근 AI 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3년 전 AI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할 당시, 정부출연연구원(이하 '정출연') 등 공공 연구기관들은 데이터와 지원 부족을 이유로 선도적 대응에 실기했습니다. 이제야 대세임을 확인하고 '국가대표 AI'를 표방하며 움직이고 있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했더라면 특수 목적 AI 분야에서 독보적인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며 '확실한 길'만 찾느라 낭비한 3년의 기회비용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과거 197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부족한 자본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실패는 곧 금기'라는 인식을 공유해왔습니다. 자본이 귀하던 시절의 생존 본능이 선진국이 된 지금까지도 우리 연구 생태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는 무턱대고 따라갈 대상이 없는 '선도자(First Mover)'의 위치에 선 만큼,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낡은 패러다임을 과감히 깨뜨려야 할 때입니다.
공공 R&D의 역할 재정립: 대학 중심의 전문 연구 생태계 구축
현재 한국의 R&D 구조는 민간과 공공의 비중이 8:2로 고착화되어 있습니다. 대기업의 연구개발 투자액이 거대해지면서, 기업이 하지 못하는 것은 국가 연구기관도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공공 R&D는 민간이 이미 잘하고 있는 상용화 연구에서 손을 떼고, 오직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자원을 재배분해야 합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공공 연구의 핵심축인 대학교의 역할 변화입니다. 미국과 달리 우리 대학은 여전히 인력 양성이라는 교육적 기능에 치우쳐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Post-doc) 중심의 날렵하고 전문적인 연구 조직을 갖추기 어려운 환경이며, 교수가 아닌 연구직이 대학을 평생의 직장으로 삼기에는 수입이나 지위 보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연연에 쏠린 연구비를 대학으로 과감히 이관하여, 대학 내에 정착할 수 있는 전문 연구직의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최근 논의되는 출연연의 통폐합과 PBS(과제중심제도) 폐지가 단순한 예산 절감을 넘어, 공공 연구를 대학교 중심의 효율적인 구조로 개편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처럼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대 규모의 과제에 집중하는 체계와, 대학의 유연한 전문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진정한 시너지가 발생할 것입니다.
방법론의 혁신을 장려하는 새로운 평가 지표의 도입
제도적 전환의 핵심은 결국 '평가'에 있습니다. 실패가 용인되는 연구 환경을 만들자는 구호는 수십 년간 반복되었지만, 객관적인 평가 지표가 부재했기에 공염불에 그쳤습니다. 결국 기존 논문 성과를 답습하거나 해외의 유행을 따라가는 연구계획서로 귀결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저는 '연구 방법론의 특이성'을 가산점으로 부여하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새로운 결과는 반드시 기존과는 다른 방법에서 나옵니다. 인삼의 항암효과를 예로 든다면, 연구팀이 기존에는 Western blot 등 단백질 발현만 보는 연구를 하다가 Bulk RNA Sequencing이나 Single Cell RNA Sequencing을 사용해 연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전기생리학 연구라면 Patch clamp 위주로 하다가 Neuropixel 사용으로 연구 도구를 과감히 전환하는 팀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입니다. 동물 모델 역시 일반적인 쥐에서 유전자 조작 모델이나 더 복잡한 실험 동물로 확장하는 시도를 장려해야 합니다.
국가 연구비는 때로는 '광기'가 느껴질 정도의 파격적이고 전례 없는 과제에 과감히 투입되어야 합니다. 그간 수많은 연구자가 연구의 자율성을 역설해 왔으나, 공공 예산의 투명성과 책임성이라는 벽 앞에서 자율성의 실체는 늘 모호한 물음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량적인 논문 편수 위주의 평가 체계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합니다. 대신 연구자가 현상을 바라보는 '도구'와 '관점'을 얼마나 독창적으로 재정의했는지를 혁신의 핵심 척도로 삼아야 합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제도적 전환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한국의 R&D는 실패의 공포를 딛고 일어서 세계가 주목하는 진정한 혁신의 발원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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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