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율배반 신약 정책 : 병주고 약주고
사회정책2025. 10. 31. 22:25한국의 이율배반 신약 정책 : 병주고 약주고

1. 신약 대신 영양제를 파는 제약사들 한국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신약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차세대 먹거리로 지난 10여년간 신약 개발을 포함한 바이오 산업은 빠진 적이 없었고 바이오 시밀러 등 일부 분야에서는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 등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마운자로, 위고비 등 한 나라의 총 생산량을 좌우할 수준의 약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듣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그 동안 후진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따라잡은 산업이 한두개가 아님에도 유독 제약산업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제약산업의 파급력을 모르는 바는 아닐텐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궁금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신약 개발의 매력이 떨어지는 구조 속에..

노인정액제의 종말과 한의원의 변화
사회정책2025. 10. 23. 05:43노인정액제의 종말과 한의원의 변화

1. 모순의 시작: 20년 넘게 멈춘 '15,000원'의 굴레 노인외래정액제(이하 노인정액제)는 한의원을 운영하는 원장들에게는 익숙하지만, 대다수 사람에게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흔히 '어르신들은 2,000원이면 침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노인정액제를 적용받은 것으로, 신문 기사를 포함한 언론에서는 잘 모르기도 하고 별 관심도 없는 분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노인정액제는 1995년부터 노인들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 시작된 제도입니다. 입원이 아닌 외래 진료비 중 총 진료비가 15,000원 이하일 경우, 환자는 공단 청구 금액의 10% 수준인 1,500원(의원급 기준)만 본인부담금으로 내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복지 개념인 이유는, 노인이 아닌 일반 환자들은 청구하는 진료비의 30%를 환자가 ..

부유세를 내던 부자들이 파업을 한다면?
사회정책2025. 10. 7. 05:53부유세를 내던 부자들이 파업을 한다면?

재정위기와 분노가 소환한 부유세 프랑스의 재정적자가 심화되면서 긴축 재정을 시행하게 되자 총리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임하고 프랑스 각지에서 시위가 격해지는 등 사회적 대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생각하는 방법은 연금 수령 연령을 미루고 공휴일을 줄이는 등 공공지출을 줄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과거 부유세 등 소위 '부자 세금'을 줄여서 세수가 감소했기 때문에 지금의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들은 초고소득 부자들을 상대로 다시 세금을 걷는 것이 단순히 세수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극심한 불평등이 야기하는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고 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프랑스 정도 되는 국가가 재정위기를 논할 정도면 사실 하루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아닌 이유, 전근대적 세금 제도
사회정책2025. 9. 23. 07:14대한민국이 선진국이 아닌 이유, 전근대적 세금 제도

'근대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도 '징세청부업자'로서 가혹하게 세금을 착취했던 과거를 덮어주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부터 천국에 가기 어려운 직업으로 언급될 만큼,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사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압박했던 '세리(稅吏)'는 역사적으로 증오와 개혁의 첫 번째 대상이었습니다.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유럽의 근대 국가들은 세금 징수를 사적 이익이 개입할 수 없는 국가 시스템 안으로 완전히 편입시켰습니다. 징수 과정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할 유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이 악명 높은 세리의 모습이 법 조항 속에서 여전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세리의..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경제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회정책2025. 9. 22. 21:18지방소멸과 인구감소, 경제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정답 사회의 성공, 그리고 명백한 한계 지방 소멸과 인구 감소라는 사회 변화는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정부가 수백조 원을 투입하고 전담 부서까지 만들며 이 문제와 씨름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백약이 무효라는 냉소 섞인 공감대만 남았습니다. 이제는 '다른 나라도 인구가 준다더라', '일본 빈집 문제에 비하면 우리는 낫다'는 식으로 체념 섞인 적응을 모색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됩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수단이 모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문제의 근저에 깔린 우리 사회의 운영 체계, 즉 '사상'을 점검해야 합니다. 제 진단은 한국 사회가 사상의 발전 단계에서 아직 모더니즘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모더니즘은 종교와 왕권이라..

정부 출연 연구원 PBS 폐지, 마냥 환영만 할 수 없는 이유
사회정책2025. 9. 17. 21:51정부 출연 연구원 PBS 폐지, 마냥 환영만 할 수 없는 이유

정부출연연구원(이하 '정출연')의 숙원이던 PBS(Project-Based System)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정출연이 정부의 돈을 받아 운영되는 사실상 '정부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각 연구원들이 외부 과제를 수주해서 스스로의 연구비를 충당해야 하는 PBS는 1996년부터 도입되었으니, 한 세대인 30년 가까이 되어서야 폐지가 되는 것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PBS가 폐지되자 이에 대한 환영의 글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과제 수주와 행정에만 몰두하게 만들고 정출연의 고유한 역할을 막은 PBS가 없어졌으니 좋다는 내용이고, PBS를 대체하는 새로운 평가기준의 필요성도 언급하는 내용들입니다. 저는 PBS가 없어지고 나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왜 PBS라는..

이상한 의료제도 '1인1개소법'
사회정책2025. 9. 4. 20:53이상한 의료제도 '1인1개소법'

한국 의료의 딜레마: 낡은 규제가 만든 새로운 현실대한민국 의료 체계는 ‘당연지정제’, ‘비영리 의료기관’, 그리고 ‘1인 1개소법’이라는 세 가지 핵심 규제를 기반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흔히 ‘의료 3불 정책’이라 불리는 이 제도들은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마련되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국 의료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이 낡은 규제와 깊이 얽혀 있습니다. 기형적인 당연지정제와 그 그림자당연지정제는 한국 의료의 가장 특징적인 제도입니다. 모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이하 건보) 진료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이는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고, 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의료기관이 건보 진료를 통해 받는 수가가 원가에..

당연지정제 폐지, 이제는 결단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회정책2025. 8. 7. 12:43당연지정제 폐지, 이제는 결단할 때가 되었습니다

당연지정제, 이제는 논의할 때입니다당연지정제는 국민 대부분에게 생소한 단어입니다.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정책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처음 듣는 제도일 수도 있습니다. 의료계 종사자조차도 '그런 제도가 있다'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이 제도가 보건의료 체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깊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하지만 당연지정제는 한국 건강보험의 핵심 구조이며, 현재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제도입니다.당연지정제란 무엇인가?당연지정제는 모든 병원과 의원, 약국이 국민건강보험 진료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제도입니다. 덕분에 국민 누구나 전국 어디서든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의료 접근성과 비용 측면에서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우수한 의료체계..

현대사회와 사주명리학: 길흉신의 재해석
사회정책2025. 7. 30. 16:44현대사회와 사주명리학: 길흉신의 재해석

십신과 전통적 길흉 개념의 이해사주명리학을 공부하시는 분들께서는 길신(吉神)과 흉신(凶神)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일간(日干)을 중심으로 다른 오행을 음양으로 구분하여 사회적인 관계를 규정한 것을 십성(十星) 또는 십신(十神)이라고 부릅니다. 십신은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과 같은 가족관계를 정의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살아가는 수단과 방식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흔히 고위 공직에 순조롭게 오르는 사람에게 '관성(官星)'이 잘 갖춰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십신은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비견(比肩): 자신의 동료나 협력자겁재(劫財): 재물을 급하게 취하려는 행위나 투기심. 경쟁자.식신(食神):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생산수단상관(傷官): 특수하고 창의적인 생산수단이면..

성리학의 그림자, '정답 사회'를 넘어
사회정책2025. 7. 9. 11:17성리학의 그림자, '정답 사회'를 넘어

조선은 끝났지만, 성리학은 끝나지 않았다역사책에서나 보던 성리학 사회의 모습을 현재 한국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이기론(理氣論)과 격물치지(格物致知)로 대표되는 성리학은 500년간 조선의 지배 이념이었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수명을 다한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유산은 여전히 우리 삶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가족의 가치, 공동체 의식,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 등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는 많은 가치들이 성리학과 부합합니다. 그러나 성리학을 숭상하던 조선왕조가 식민지배라는 비극으로 끝을 맺었듯이, 성리학의 부작용 또한 여전히 한국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정답 사회'의 기원: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여러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정답'을 요구하는 문화입니다.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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