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의학의 '근거 중심' 흐름과 기초 연구의 암묵적 위계 지난 20년간 현대 의학은 '의사의 숙련도'라는 주관적 영역을 넘어,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이라는 견고한 객관적 체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과거 특정 병원에 가면 무조건 수술을 권유받던 시대와 달리, 이제는 진단 기기의 발달과 건강보험 시스템의 고도화로 인해 '입증된 치료'만이 사회적·경제적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나타난 의료비 효율화 시도는 '심평의학'이라는 자조 섞인 용어를 낳을 만큼 강력한 표준화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시적 근거 수준(Level of Evidence)은 임상 연구에만 국한되어 있을 뿐, 기초 연구 분야에서는 여전히 연구자들 사이의 '암묵적인 동의' 수..
들어가며: 하나인 줄 알았던 '연구'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저는 '의학연구'가 단일한 하나의 흐름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논문을 찾고, 동물실험을 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얻는 것을 하나의 연속된 과정으로 여겼습니다. 국책연구원에서 6년간 사람 대상 연구를 하면서, 동물실험은 전임상, 사람 대상 연구는 임상연구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임상을 9년간 하고 나서 기초 연구를 하게 된 지금, 이 둘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크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네트워크 약리학을 공부하며 기초연구의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동안 주로 임상연구에 몰두했던 경험과 비교해보니 흥미로운 차이점들이 보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차이점들을 살펴보고, 두 분야가 어떻게 서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