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을 통해 저는 의사과학자 양성 정책의 성공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주무 부처를 보건복지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몸담으며 깨달은 사실은, 부처 이관이라는 행정적 절차보다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철학의 부재’가 대한민국 의사과학자 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연일 ‘바이오 헬스케어의 미래’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연구자들은 정책의 모순 속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행정 편의주의가 초래한 ‘사후 환수’의 공포 현재 많은 대학에서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연구생활장려금’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일제 대학원생들의 최소 생계비를 보조하겠다는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의 행정은 실망스럽기 그지없..
1. 신약 대신 영양제를 파는 제약사들 한국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신약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차세대 먹거리로 지난 10여년간 신약 개발을 포함한 바이오 산업은 빠진 적이 없었고 바이오 시밀러 등 일부 분야에서는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 등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마운자로, 위고비 등 한 나라의 총 생산량을 좌우할 수준의 약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듣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그 동안 후진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따라잡은 산업이 한두개가 아님에도 유독 제약산업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제약산업의 파급력을 모르는 바는 아닐텐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궁금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신약 개발의 매력이 떨어지는 구조 속에..
유목민적 유연성의 시대'시스템이 엉성하다', '변화가 급격하다'는 평가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였습니다. 다른 선진국들이 견고한 제도적 기반 위에서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동안, 한국은 마치 유목민처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정권 교체 시마다, 때로는 한 정권 내에서조차 조세·교육·복지·국방 등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들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었습니다. 국민들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정부가 뭔가 일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이는 분명 한국 사회만의 뛰어난 적응력이자 유연성으로 작용하였습니다.하지만 이 유연성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한 정권에서 추진한 정책이 다음 정권에서 완전히 폐기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