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풍경이 말해주는 AI 버블의 실체와 닷컴버블과의 차이
OpenAI의 위상이 흔들린다는 소식이 조금씩 들려옵니다. 2023년 무렵 유료로 ChatGPT를 쓰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무료 모델만 이어 써도 그때보다 훨씬 똑똑한 AI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불과 3년도 안 된 사이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이처럼 AI는 점점 똑똑해지고 다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귀에 딱지가 앉아 ‘이 버블도 곧 끝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듯합니다.
모든 기술은 버블을 통과하며 한 단계 발전합니다. 백여 년 전의 라디오와 철도가 그랬고, 20여 년 전의 닷컴버블이 그랬으며, 지금의 AI가 바로 이 단계를 지나고 있습니다. 버블이 없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역설적으로 버블을 거치지 않은 기술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해 퀀텀점프를 이루지 못한 채 사장되기 일쑤입니다.
사실 사방에서 AI 이야기가 들려오지만(저 역시 AI에 대한 글을 꽤 썼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하철을 타면 AI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을 찾기란 무척 힘듭니다. 여전히 유튜브, 게임, SNS가 대세이며, AI는 우리 생활의 아주 일부분에만 자리 잡고 있을 뿐입니다. 이미 대중은 AI로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보았고, AI 기업들 역시 어디서 돈이 되고 어디서 안 되는지 대략 감을 잡아가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물론 버블은 언젠가 꺼질 것이고 그 여파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인 국내 반도체 회사들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큽니다. 하지만 이번 AI 버블은 기존의 버블과 다른 결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바로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들 사이로 실제 ‘돈’이 돌고 있다는 점입니다. 닷컴버블 시절에는 매출도 없는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주가만 폭등했다면, 지금의 AI 기업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회사 사이에서 서로 거대한 매출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 지점이 과거의 버블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버블이 의심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일상과 업무에서 AI로 할 수 있는 경험의 종류가 한계에 다다르며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빅테크의 체력 싸움, 그리고 다가올 종량제의 시대
제가 내다보는 AI의 판도에서, 현재의 싸움은 결국 구글이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구글은 값비싼 엔비디아의 GPU가 아닌, 자체 개발한 칩셋인 TPU를 활용해 현재의 성능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ChatGPT가 워낙 사용자가 많다 보니 일부 영역에서 학습이 잘 되어 있고 독보적인 대화 감각을 보여주지만, 현금이 마르지 않는 구글과 투자금에만 의존하는 OpenAI는 분명 기초 체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OpenAI가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압도적인 성능 격차를 보여주는 것뿐인데, 최근의 기술 개발은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에 밀리는 인상을 주고, 사용자 확보마저 제미나이에게 매섭게 쫓기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메타(Meta)가 주도하는 오픈소스 AI 생태계가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오면서, 비싼 구독료를 요구하는 기업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구글이 짐짓 천천히 지켜보고 있다가, 경쟁사가 좋은 기능을 내놓으면 거대한 자본력으로 단숨에 따라잡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듭니다. 구글의 입장에서는 자금 측면에서 급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구글 역시 기존의 핵심 수익원인 검색 광고 모델이 AI로 인해 자기잠식(카니발라이제이션)될 수 있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기는 합니다.
앞으로 ChatGPT는 예전의 트위터처럼 사용자의 감정과 티키타카를 받아주는 독특한 감성 영역의 AI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질척거린다고 느낄 정도로 대화를 다정하게 끌고 나가는 능력은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제미나이의 다소 건조하고 딱 끊어지는 표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명확합니다. 문제는 ‘그 감정형 대화에 기꺼이 매달 몇만 원씩 돈을 내고 쓸 것인가’입니다. 수요가 없진 않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규모를 줄여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승자가 될 구글과 제미나이입니다. 구글은 결국 철저하게 현금을 벌어들이려는 기업입니다. 이미 하드웨어적 인프라 구축을 상당 부분 달성한 만큼, 앞으로는 ‘쓴 만큼 돈을 내는’ 제도로 바뀔 것입니다. 헤비유저들에게는 빡빡한 종량제가 펼쳐질 것이고,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지금보다 약간 덜 똑똑한 AI를 기본으로 제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AI가 똑똑해지는 만큼 엄청난 전력과 비싼 칩셋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누려온 압도적인 AI 성능은 시장 선점을 위해 원가 이하로 공급된 역마진 마케팅에 가까웠습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과연 투자한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가?"라는 냉정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거시경제의 파고 속에서 지식노동자가 살아남는 법
이러한 변화는 끊임없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가 더 이상 내려가지 않거나 되려 올라갈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리 AI 기술이 좋아도 자본 비용이 비싸지면 투자자들은 당장 눈앞의 현금을 원하게 됩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AI 기업에 돈을 묶어두느라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차라리 치솟는 국채 금리의 이자를 챙기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동성이 메마르면 AI 버블의 화려한 막도 서서히 내려갈 것이고, 한국 경제 역시 그 거센 파고를 무사히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이 거품이 한 차례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사용량을 빡빡하게 제한당하는 ‘조금 덜 똑똑한’ 무료 AI 거나, 지갑을 열어야만 쓸 수 있는 유료 서비스일 것입니다. 물론 언젠가는 다시 기술적 퀀텀점프가 일어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겠지만, 그사이의 공백기 동안 우리는 이 냉혹한 비용의 시대에 적응해야 합니다. 지식노동을 하는 제 입장에서도 AI 구독료를 몇만 원 더 내는 것이 손해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만간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 압박으로 인해 지금처럼 마음껏 고성능 AI를 쓰기 어려워질 것을 알기에, 시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AI의 무서운 발전으로 인해 인간의 사유 능력이 퇴화하지 않을까 걱정하곤 합니다. 저 역시 그 취지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앞으로 비용 장벽 때문에 어정쩡하게 '덜 똑똑해진 AI'를 마주하게 된다면, 오히려 아무 일이나 무턱대고 맡겼다가 인간의 손이 두 번, 세 번 더 가는 번거로운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를 극복하고 AI를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인간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고도화된 지적 능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AI의 한계를 알아채고 이를 보완하는 능력이 곧 새로운 시대의 강력한 경쟁력이 되는 셈입니다. 복잡한 미래학 대신 "지메일과 사진 백업 용량 때문에 몇 년 전부터 구글원을 구독했고, 제미나이를 끼워주니 쓴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로, 오늘도 저는 조금 멍청하지만 어차피 지불한 비용으로 함께할 수 있는 제미나이에게 이 글의 감수와 교정을 맡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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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