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을 요청하는 이유
경영과 연구를 하다보면 자문을 받거나 반대로 해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분야는 제가 직접 몸담아 경험했거나 나름 심도 있게 리뷰를 했다고 생각되는 분야이고, 어떤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한때 몰두했거나 지금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지만 저의 커리어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 알 것 같다는 이유로 들어오는 자문도 있습니다. 제가 별다른 보상 없이 자문을 해주고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특별한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사업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무엇인가를 제안하고 싶을 때입니다. '오지랖'과 '호의' 사이 어딘가에 있는 자문일 것입니다.
자문을 할 때마다 드는 고민은 하나입니다. 현장에 답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려 하는 지에 대한 것입니다. 저 역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도 능동적으로 자문을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한의원이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음으로 양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장 우선순위는 같은 업종, 혹은 비슷한 진료 유형을 하는 원장의 경험이었고, 그 다음이 한의사 게시판 등에서 공유되는 정보였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누구의 사업도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에도 운영 전략에 대해 외부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수요는 분명 존재합니다. 많은 경영자들은 자신의 판단이 적절한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자문은 그 확인 과정의 한 방식입니다.
자문이 쉽게 작동하지 않는 이유
사업은 성공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으며, 자문의 역할도 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공 이전에는 정보 과잉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에 수많은 전략과 조언을 실험합니다. 그러다 실패하거나 성공으로 귀결됩니다. 실패하면 그 분야를 떠나거나 다시 도전하고, 성공하면 하나의 사업 모델이 자리 잡습니다.
문제는 성공 이후입니다. 하나의 아이템이 한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코카콜라처럼 사람들의 취향을 장기간 고정시킨 사례가 아니라면, 한때 성공했던 기업이 지금은 이름조차 남지 않은 경우도 흔합니다.
성공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는 사실 경쟁자들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경험입니다. 성공은 그 중 하나가 선택된 결과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공 이후에는 기존 방식이 여전히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만, 동시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성공을 위해 들였던 노력과 시간을 다시 반복할 열정이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도 큽니다. 기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근본적인 변화는 자연스럽게 지연됩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성공의 함정(Competency Trap)이라고 부릅니다.
이 과정에서 자문은 종종 힘을 잃습니다. 성공 이전에는 수많은 정보 중 하나로 소비되고, 성공 이후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동시대에 같은 분야에서 실제로 크게 성공한 사람의 자문을 직접 듣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사업에 집중하고 있거나, 경쟁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문 시장에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당장 같은 시장에서 성공을 재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구조가 됩니다.
자문의 가치는 사람보다 구조에 있다
이렇게 보면 자문은 의미가 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경영자들이 외부 평가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의사결정이 적절한지 점검하려는 욕구는 조직 규모와 상관없이 계속 존재합니다.
문제는 자문이라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자문을 어떻게 조직 안에서 받아들이고 처리하느냐에 있습니다.
외부 평가가 기업 운영 과정 속에 루틴으로 내재화된 조직은 자문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사업의 성장과 쇠락 사이클과 별도로 외부 의견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가 있는 기업은 전체 매출 사이클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남들이 잘 벌 때 더 벌고, 남들이 어려울 때 덜 손실을 보는 형태입니다. 때로는 기업의 생존이나 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이 외부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하는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자문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구조가 갖춰진 조직과 일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필요한 정보와 자문의 역할이 분명하고, 무엇보다 관계가 예측 가능합니다. 이런 체계가 없는 조직에 자문을 응하다 보면 자문이라는 이름 아래 홍보 모델로 활용되거나, 경영진의 심리적 안정 장치로 자문이 쓰이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자문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사람을 보통 컨설턴트라고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컨설턴트의 능력에 관심을 가집니다. 막혀 있던 전략을 한 번에 뚫어 줄 통찰을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컨설턴트보다 컨설턴티(Consultantee)의 역량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 연결할 수 있는 조직일수록, 자문이라는 흔하고 일상적인 행위가 기업 경영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자문을 해주는 사람도, 받는 경영진도 이러한 준비가 되어 있는 지 평가를 한 이후에 자문을 받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자문은 특별한 통찰을 주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부 의견을 조직 안에서 처리하는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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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