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규범의 해체와 '각자도생'의 지역 패권적 도덕
과거 세계화가 정점이었던 시절, 우리는 전 지구가 공유하는 보편적 정의와 인권, 기업 윤리라는 표준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계화는 종말을 고했고, 각 지역의 패권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의 논리를 앞세우는 시대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글로벌리즘'이 '돈로주의(Donroe Doctrine)'로 변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거시적 균열은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투영됩니다. 대중은 더 이상 거창한 보편적 정의에 기대지 않습니다. 대신 나에게 실질적인 '보급선'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나 집단을 하나의 패권으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보호받기를 자처합니다. 쿠팡과 같은 거대 플랫폼이 정부의 압박이나 도덕적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대중이 플랫폼을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지켜주는 '최소 단위의 지역 패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도덕은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나의 편의를 보장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실용적 선택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고령화와 저성장이 낳은 '도덕적 에너지의 고갈'
전 지구적인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고금리 기조는 우리 사회의 심리적 여유를 앗아갔습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예방적 도덕'에 투자할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즉,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부당한 기업을 불매하거나 정의를 외치는 것이 미래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라고 반문하는 사람에게는 '저 부도덕함이 언젠가는 너에게 불이익을 줄거야'라는 답을 때로는 주입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의 대중은 늙고 지쳐 있습니다. 도덕적 분노는 엄청난 감정적·경제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입니다. 인프라가 된 서비스의 부도덕을 비난하기 위해 당장의 편리함(로켓배송 등)을 포기하는 것은, 생산성이 떨어진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너무나 가혹한 '비용'입니다. 대중은 직접적인 피해가 내 계좌나 문 앞까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분노를 유예하는 '사후적 실리'를 선택하게 됩니다. "나쁜 줄은 알지만, 내 삶이 너무 고단하기에 눈을 감는다"는 태도는 개인의 타락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에너지 절약 전략에 가깝습니다.
불편한 진실과의 동행, 새로운 도덕 기준에 적응하는 긴 시간
우리는 앞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힘을 가진 자의 의지'가 기준이 되는 세상을 견뎌내야 합니다.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새로운 생산성 돌파구(AI, 로봇 등)가 완전히 정착되어 사회적 여유를 되찾기 전까지, 도덕의 기준은 끊임없이 유동하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겪는 생경함은 우리가 오랫동안 '규범의 시대'를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로의 이행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유출된 정보가 당장 나를 해치지 않는다면 플랫폼의 힘을 옹호하고, 기업의 오만함보다 나의 택배 박스를 우선시하는 풍경은 앞으로의 표준(New Normal)이 될 것입니다. 이 긴 적응의 시간 동안 우리는 '예방' 대신 '적응'을, '원칙' 대신 '효용'을 택하며, 도덕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환경 변화에 민감하고 말랑말랑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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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