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연구 현장으로 돌아오니 많은 것이 변했음을 실감합니다. 과거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임상 연구에 매진했다면, 지금은 대학 연구실에서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주제가 모두 바뀌어 일률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연구는 여전히 '사람'이 하는 것이고, 수많은 동료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저는 "왜 연구를 하고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추격에서 선점으로, 양에서 질로의 패러다임 전환
지난 10년 사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연구의 방향성입니다. 과거에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뒤를 쫓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영국은 체계적 문헌 고찰, 미국과 유럽은 기초 연구, 일본은 한약 연구 등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선두 그룹을 인식하면서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아직 손대지 않아 자료가 부족한 분야를 먼저 찾아내고, 그 분야를 전담하는 연구팀이 되는 실질적인 선점 전략이 중요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에서도 드러납니다. 과거에는 낮은 점수의 논문이라도 여러 편을 써서 양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약탈적 학술지'에 대한 경계와 함께, 논문의 편수보다는 학술지의 순위(Q1, Q2 등)와 영향력을 먼저 고려합니다. 양적인 팽창을 넘어 질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성숙한 연구 생태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좁혀진 보상의 격차, '내적 동기부여'가 생존 전략인 이유
연구자의 태도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인프라의 차이가 극심했기에 해외 유학이 필수적인 코스처럼 여겨졌고, 그 자체로 취업과 직결되는 중요한 스펙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외 인프라 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어디에서 공부했느냐보다, 어떤 새로운 주제를 선점하여 지속적인 성과를 냈느냐가 연구자의 실력을 증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해진 키워드가 바로 '동기부여(Motivation)'입니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남들만큼 열심히 하면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이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저임금과 전문직(교수 등) 소득 사이의 상대적 격차가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30년전에 비해 지금 국립대 교수 월급은 2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이에 비해 최저임금은 1996년 1,275원이던 것이 2026년 10,320원으로 8배 차이가 납니다. 사회가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단순히 경제적 이득이나 사회적 지위만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나 커진 것입니다. 이제 연구자에게 동기부여는 선택이 아닌,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핵심적인 생존 전략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있을 그 일, 연구자의 본령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동기를 찾아야 할까요? 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합니다. "만약 경제적, 사회적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여행이나 소비 같은 일시적인 즐거움은 반복될수록 그 효용이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결국 할 일을 다 하고도 남는 시간에 기꺼이 하고 있는 그 일이 바로 나의 '직업적 본질'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는 일의 목적이 더 많은 급여, 사회적인 지위 등 외부에 있던 것이, 자신만의 가치와 방향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는 '몰입'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저의 경우,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세상만사에 관심을 두고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정보를 정리하고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 바로 연구자였기에, 저는 다시 연구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군가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서, 누군가는 운동하는 것에서 기쁨을 찾듯, 연구자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동력을 얻어야 합니다. 타인의 칭찬이나 사회적 의무가 사라진 빈 시간에도 내가 멈추지 않고 수행할 그 일, 그것을 발견하는 과정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는 외로움을 견뎌내는 힘이 되는 것과 동시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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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