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멈추지 않는 폭격, 되돌릴 수 없는 의료의 변화
의정 갈등이 공식적으로 끝났나 싶으면서도, 최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정부의 갈등 양상을 보면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정부는 민감한 안건들을 융단 폭격하듯이 쏟아내고 있으며, 비대면 진료 등 지난 20여 년간 끌어왔던 쟁점 법안들은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지난 갈등 국면에서 총력 투쟁을 하지 못한 대가를 의협은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협의 대화가 조금 더 원활했다면 파국은 피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소통이 불가능했던 결과가 지금의 사태임을 감안하면, 과연 정답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 휴학이라는 가장 강력한 투쟁 카드를 소진해 버린 현시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이번 기회에 의료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입니다. 개원가가 중심인 의협은 이제야 광장으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의협 내부에서는 이제라도 '국민을 위한다'는 프레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과거의 '나만 옳다'는 아집에서 한 발 나아간 것이겠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뭅니다. 여전히 의사들이 누려온 수많은 권리를 놓치기 싫다는 의도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은 아닐 것입니다.
2. 비용 절감의 역설: 내가 가는 병원은 왜 불편해질까
앞으로 의료 현장은 정부의 의도대로 재편될 것입니다. 그 변화의 핵심 목표는 '비용은 절감하되, 원망은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과거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의 의료 체계에서 "어느 정도 먹고사는 사회"의 의료로 전환되는 과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이 체감할 서비스의 질은 낮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생명이 위태롭거나 필수적인 돌봄이 필요한 영역에만 자원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줄이는 방향, 즉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는 쪽으로 제도가 설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체 수탁'과 '성분명 처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행 제도는 동네 의원이 검사와 투약을 통해 어느 정도 수익을 보전받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인센티브가 사라지면 의원들은 굳이 번거로운 검사를 하지 않게 될 것이고, 재정은 아껴질 것입니다. 반면, 환자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집 근처 병원에서 편하게 검사받고 약을 타기가 어려워집니다. 1차 의료부터 정말 급한 사람이 아니면 이용하기 불편하도록 문턱을 높이는 셈입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제도가 '의료 서비스 축소'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의료 이용자인 국민들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3. 의사의 적정 소득과 의료의 질(Quality)은 비례한다
"의사의 월 소득은 얼마가 적절합니까?"
먼 미래에 인공지능과 로봇이 의사를 완전히 대체한다면 모를까, 여전히 의료 현장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의사의 소득 또한 이제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으로 들어왔습니다. 의사 수를 계속 늘리면 시장 논리에 의해 페이(급여)가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맞습니다. 실제로 지난 전공의 파업 당시 요양병원이나 미용 의원의 페이가 하락하고 구인난이 일시적으로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되자 다시 지방에서는 고액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는 뉴스가 들려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만약 의사의 기대 소득이 대폭 낮아져 최저임금 수준에 수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중국의 '맨발의 의사'처럼 의사 면허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사회주의적 의료 형태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 경우, 우수한 두뇌들이 굳이 의사가 되려 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아무리 의대 정원을 늘리고 면허를 많이 발급해도, 똑똑한 인재들은 바이오, 공학, 금융 등 보상이 확실한 다른 분야로 떠날 것입니다. 간호사를 많이 배출해도 열악한 처우 때문에 면허 소지자의 30%가 장롱면허인 현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생사를 오가는 심장 수술을 집도하는 전문의에게는 수억 원의 연봉도 아깝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간단한 미용 시술을 하는 의사에게는 월 500만 원도 많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책정한 금액만큼 의료 인력의 수준이 결정되고, 그 수준이 곧 내가 받을 의료의 질(Quality)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의료 정책은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셈법을 떠나 소비자의 관점에서 단순하게 접근해 봅시다. 의사들이 밀려난 배경에는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뿐만 아니라, 비용 효율화를 원하는 여론의 지지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 선택에 따른 청구서를 확인할 시간입니다.
싼 게 비지떡이 되어도 괜찮으신가요? 아니면 비용을 치르더라도 수준 높은 의료를 원하십니까?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의사의 적정 소득, 그 합의점의 출발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사회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의료는 사회의 그림자: 치료의 시대에서 돌봄의 시대로 (0) | 2025.11.20 |
|---|---|
| 의사과학자 정책의 시작: 주무부처 변경부터 (0) | 2025.11.12 |
| 의정갈등, 그 후: 의협에 남은 단 하나의 카드 (0) | 2025.11.10 |
| 앞으로 동네 병원에서 검사 받기 어려워집니다 (0) | 2025.11.04 |
| 한국의 이율배반 신약 정책 : 병주고 약주고 (0) | 2025.10.31 |
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