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정책의 청구서: 의정 갈등이 보여주는 경제적 대가
국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는 결국 국민입니다. 굳이 헌법 1조 2항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대리인인 정치인의 손을 빌리든 국민이 직접 나서든, 정책의 추진과 그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국민의 몫입니다. 언론을 통해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정책들은 막무가내인 듯싶다가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모양새를 취합니다. 문제는 이 복잡한 정책들을 국민이 매번 정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최근의 의정 갈등만 봐도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감정적인 대립과 복잡다단한 의료 시스템, 그리고 정치적 계산이 뒤엉켜 있습니다. 국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의사들의 파업을 견디며 응급실 이용을 줄여야 했습니다. 지금은 개원가의 보장 축소가 화두입니다. "돈 잘 버는 의사들을 손본다"는 감정적 응징의 쾌감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냉정히 보면 이는 공급 축소를 의미합니다. 의사가 줄어들면 국민의 의료 이용 총량도 줄어드는 것은 경제의 기본 원리입니다. 아직은 체감되지 않을지 몰라도, 1~2년 내로 병원 문턱이 확연히 높아졌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론은 이 인과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도하게 흐를 뿐입니다.
"돈이 들더라도"가 아닌, "빚을 내서라도"의 시대로
개별 정책을 일일이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특정 목적을 위해 나랏돈을 쓴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 동의할 것인가"입니다. 과거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은 소방관 처우 개선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코로나 이전, 저금리와 저물가 시대에는 "돈이 들더라도 해야 할 일인가?"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정부 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고, 하고 싶은 일들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고 정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돈이 들더라도'라는 느슨한 기준을 들이대기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엄혹합니다. 한국 정부의 예산이 700조 원에 육박한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고물가로 인해 화폐 가치는 떨어졌고, 인건비와 복지 비용 등 꼬박꼬박 나가야 하는 고정비용은 급등했습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실질적인 가용 예산'은 사실상 쪼그라든 셈입니다. 결국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채를 찍어냅니다. 연간 이자만 30조 원에 달하고, 원금을 줄일 방법이 요원하니 이자 비용 100조 원 시대도 머지않았습니다.
이제 정책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돈이 들더라도'가 아니라, '빚을 내서라도'로 기준을 바꿔보십시오. 느낌이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빚을 내서라도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 vs "빚을 내서라도 모든 병원비를 대줘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청년들에게 현금을 줘야 한다."
어떻습니까? 전자는 국가의 존립과 미래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투자'이기에 빚을 낼 명분이 섭니다. 하지만 후자는 당장의 만족을 위한 '소비'에 가깝기에 빚을 내서 하기에는 주저하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나 싼값에 병원을 간다'는 희망찬 미래는 돈이 넘쳐날 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빚으로 나라를 꾸려가는 시점에서는 사치스러운 공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 합의보다 무서운 '채권자의 동의'
국채 발행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선진국의 특권이지만, 동시에 족쇄이기도 합니다. 갚을 능력이 있어 보이니 돈을 빌려주는 것이지, 갚지 못할 나라에 돈을 댈 바보는 없습니다. 국채는 실시간으로 이자가 변하고 갚아야 할 돈의 가치가 요동치는 무서운 빚입니다. 이자 비용을 생각하면, 미래에 원금 이상의 가치를 확실히 더할 수 있는 분야(교육, 연구, 국방 등)가 아니면 지출을 극도로 자제해야 합니다.
나머지 분야를 '빚을 내서라도' 추진할지는 이제 국민들뿐만 아니라, 우리 국채를 쥐고 있는 글로벌 '큰손'들이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채권 시장이 "NO"라고 외치며 금리를 올려버리면, 아무리 국민적 합의가 있어도 그 정책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조만간, 정치 세력들이 지지고 볶으며 합의를 만들어내던 '정치의 시대'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채권자의 동의 없이는 정책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채권의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대국의 자격: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가 (0) | 2026.01.03 |
|---|---|
| 선진국이라는 도달점, 강대국이라는 갈림길: 한국 사회의 실질적 불안에 대하여 (1) | 2025.12.26 |
| 최저임금 의사에게 내 생명을 맡길 수 있을까? (0) | 2025.11.25 |
| 의료는 사회의 그림자: 치료의 시대에서 돌봄의 시대로 (0) | 2025.11.20 |
| 의사과학자 정책의 시작: 주무부처 변경부터 (0) | 2025.11.12 |
한의사입니다. 근데 그냥 침만 놓는 사람 아닙니다. 한의학부터 사회 꼬집기, 경제·경영 및 기술까지— 세상이 던지는 말들에 한 마디씩 반사해봅니다.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