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부의 '설계': 왜 동네병원에서 검사가 사라지는가
1년 반 전 동네의원이 사라질 것을 예측한 글을 썼습니다. 그간 의정갈등이라는 큰일을 겪었지만, 정부의 기본 기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료전달체계 개편, 비대면진료 제도화 등 그 방향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동네의원이 절반 이상 사라진다면?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의사협회와 환자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있으며, 가장 쟁점인 의대정원 문제는 증원 원칙만 확인하고 구체적인 숫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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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목표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막고 '중증, 요양, 간병'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재편하는 것입니다. 재원은 한정적이기에, 동네병원의 재원을 빼서 이 목표를 달성하려 합니다.
동네병원의 수입은 건강보험 진료와 비급여로 나뉩니다. 건강보험 진료만으로는 적자이며(공단 직영 병원조차 그렇습니다), 그나마 건강보험 항목 중 수익이 남는 것을 많이 처방합니다. 검사가 그 중 하나였습니다. 도수치료처럼 실손보험도 적용되니 많은 동네 병원들이 아예 비급여인 피부미용 시술만 하거나, 검사를 많이 하거나, 둘다 하거나 해서 병원을 운영해왔습니다.
정부는 이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핵심은 '상대가치점수'입니다. 모든 의료 행위에는 점수가 매겨지고, 그 총합은 건강보험 예산과 연동됩니다. 내년부터 진찰료 점수만 다른 항목에 비해 소폭 오르는데, 이는 총점이 묶인 상태에서 다른 행위, 즉 검사료의 점수는 사실상 깎인다는 의미입니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동결은 삭감과 같습니다.
여기에 실손보험 축소, 그리고 최근의 '혈액검사 위탁업체 직접 청구' 정책이 더해집니다. 기존에는 병원이 환자에게 검사료와 분석료를 다 받은 후 저렴한 위탁업체에 분석을 맡겨 차익을 얻었다면, 이제는 병원(채혈 행위)과 업체(분석 행위)가 각자 청구하게 됩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검사를 많이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으로, 이런 정책들은 모두 '동네병원의 검사 인센티브 제거'라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 의사의 '딜레마'와 시장의 '양극화'
이러한 정부 기조 하에서 동네의원들은 기로에 섰습니다. 이것이 앞으로의 핵심 '관전 포인트'입니다. 의사들이 수고로움과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환자에게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꾸준히 기계를 돌릴까요? 아니면 정부 정책의 압박에 굴복해 검사 자체를 포기하고 '진찰과 약 처방' 중심으로 돌아설까요?
아마도 시장은 두 방향으로 쪼개질 것입니다.
첫째, 대부분의 동네병원은 정부의 유도대로 검사 기계를 줄이거나 없애고, 의사와의 상담과 약 처방을 중심으로 하는 병원이 될 것입니다. 이는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둘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소수의 동네병원입니다. 아예 검사만 전문적으로 수행하여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는 '의원급 검진센터' 모델입니다. 환자는 A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검사는 B 병원에 가서 받는 형태가 일상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한곳에서 진찰과 검사를 모두 받는 '원스톱' 모델은 비효율적인 구조가 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3. 환자의 '위험': 오진율 증가와 의료의 질 저하
이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환자입니다. 동네병원에서 검사가 줄어든다는 것은,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핵심 도구를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오진율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설령 검사를 유지하는 병원이라도 원가 압박에 시달릴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동네병원은 저렴한 기계, 종합병원은 좋은 기계, 대학병원은 최고급 기계'를 쓴다는 인식이 고착화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동네병원이 '대학병원급 최신 초음파 기기 도입!' 같은 문구로 광고할 정도로 최신 검사기기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이마저도 환자들은 믿음이 안 가면 실손보험을 믿고 바로 대형병원의 외래진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검사료가 동결되고 마진이 사라지는 구조 하에서, 값비싼 최신 기기를 도입하고 유지할 여력은 사라집니다. 실손보험의 축소로 상급병원으로 바로 가서 진찰을 받기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결국 환자들은 간단한 검사조차 중대형 병원에 가서야 받을 수 있게 되고, 동네병원에서는 의료의 질 저하를 감수해야 할지 모릅니다. 정부 기조상 기계를 많이 사용하는 동네병원은 줄어들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이 예상이 깨지려면 경제가 급성장하거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지금의 중대형 병원급 검사를 동네병원에서도 아주 저렴하게 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필요한 검사들은 미리 받아놓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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