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원의 종말: 도미(渡美) 의사에서 살펴보는 의료의 미래
관리급여 전환과 1차 진료 모델의 한계
도수치료가 관리급여 체계 안으로 편입되자마자 처방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처방약 배송을 둘러싼 약사회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고, 지역 의료망의 중증 응급 대응력은 이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약화되었습니다. 대학병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원가 바닥에서도 지난 수십 년간 작동하던 단독 개원 문법이 멈춰 서고 있습니다.
최근 부쩍 늘어난 외국인 대상 병원 개원은 이러한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10여 년 전 처음 개원을 준비할 때, 명동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환자를 보던 선배 원장님의 글이 기억납니다. 한마디로 수익 변동성이 극단적이었습니다. 어떤 달은 상상 이상의 매출을 찍었지만, 어떤 날은 진료실을 원장님 혼자 지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분석 자료들도 외국인 진료가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못 박았습니다. 메인이 될 수 없는 시장이었습니다. 시스템이 안정적이었다면 굳이 이 리스크 큰 영역에 매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내수 시장의 1차 진료 모델이 성숙기 끝자락에 다다랐음을 방증합니다.
반도체 치킨게임과 병원의 자본 집약화
어떤 산업이든 성숙기 후반부에 진입하면 플레이어가 정리되고 대형화됩니다. 반도체 산업이 전형적이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국내외에 수많은 반도체 기업이 난립하며 기술 경쟁을 벌였습니다. 끝없는 치킨게임을 거치며 지금은 손에 꼽는 소수 대기업만 살아남았습니다. 첨단 벤처 기술이었던 반도체가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수적인 기간산업으로 편입된 것입니다. 수많은 중소 플레이어의 도태가 그 이면에 있었습니다.
병원 개원 시장도 이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동네 의원은 드물었습니다. 건강보험이 없던 시절이라 진료비 전액을 환자가 자비로 냈습니다. 가벼운 증상은 약국 임의조제나 한약방이 담당했고, 정말 생사가 걸린 중증 질환이어야 병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지불 능력이 부족하니 의사 수가 적어도 개원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병원에 남는 것이 안정적이었고, 그 한계를 돌파하려던 이들이 택한 길이 1970년대의 도미(渡美)였습니다. 미국 내 의사 부족으로 외국 의대 졸업자(IMG)에게 문호가 넓게 열려 있었고, 금본위제 시절 달러의 실질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주요 의대 졸업생의 30~50%가 태평양을 건넜던 배경입니다.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 정착과 소득 증대로 1990년대부터 로컬 개원가의 폭발적 성장이 시작되었습니다. 동네 의원으로 시작해 병상 수를 늘리며 의료법인으로 전환하던 황금기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의약분업 전후로는 수가 인상과 풍부한 비급여 진료를 바탕으로 대형병원 교수들까지 대거 개원가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일반 질환 진료만으로도 고소득이 가능했던 시기였습니다. 한의원 역시 이 흐름 안에서 최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비급여 교차보조의 붕괴와 규제 환경의 변화
성장세가 꺾이자 개원가는 생존을 위해 피부미용과 실손보험 기반의 도수치료를 결합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사 단체 내부에서도 "의사가 무슨 장사꾼처럼 미용시술을 하느냐", "도수는 정통 의료가 아니다"라며 반발이 거셌습니다. 그러나 이 모델을 빠르게 흡수한 의원들은 코로나19 시기까지 실손보험을 지렛대 삼아 높은 현금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실손에서 배제되고 미용 의료기기 사용이 제한되었던 한의계는 상대적인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장기 금리 상승 국면과 재정 고갈이 맞물린 지금, 정부의 기조는 명확합니다. 의료비 감축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 실손보험 비급여 심사 강화, 보장성 통제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필수의료 일부에만 최소한의 재정을 묶어두고 나머지는 지출을 옥죄는 구조입니다. 외국인 유치 모델에 다시 불이 붙는 이유도 이 통제망 밖으로 나가려는 고육지책에 가깝습니다.
유럽의 경로를 보면 다음 그림이 대략 그려집니다. 국가 통제 아래 놓인 공공·급여 병원에 남는 인력은 제한적입니다. 진료실 안에서 환자를 보는 전통적인 노동만으로 높은 소득과 안정을 기대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결국 시스템 밖의 연구 데이터, 제약·바이오, 컴퓨팅 기반 신약 개발 같은 기술 자본 생태계로 진로가 분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엑소더스의 문법
물론 지금 시점에서 이러한 전환은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거대한 엑소더스는 늘 "저게 말이 되나?" 싶은 황당함에서 출발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 처음 미국에 가겠다고 영어 단어를 외우던 의사들을 보며 동료들은 "말도 안 통하는 남의 나라 가서 무슨 진료를 하느냐, 미쳤다"고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의약분업 직후 로컬에 피부·미용 레이저를 처음 들이던 의사들을 향해서도 기존 의학계는 "의사가 장사꾼처럼 레이저 쏘고 보톡스를 놓아서 되겠느냐"며 비웃었습니다.
지금의 바이오텍 창업이나 딥테크 헬스케어로의 이탈 역시 비슷한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족관의 산소 농도가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개체들은 늘 비주류의 엉뚱한 시도에서 나왔습니다. 진료실 밖의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눈을 돌리는 지금의 선택들이 과연 일시적인 방황인지, 아니면 다음 사이클을 선점하는 경로인지 계산기를 두드려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