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투자

부활한 관세의 시대, 탈세계화 30년의 생존 방정식

상계동백곰 2026. 8. 14. 08:42

최근 발표된 미국의 드론 관세 부과 조치에서 알 수 있듯, 한미 FTA가 사실상 무력화된 현실 속에서 관세 인상 뉴스는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면 과거의 자유무역 시대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무역 장벽은 특정 정치인의 돌발적 기행이 아닙니다. 이는 미 의회가 주도하여 결정한 대중국 견제 및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미국 국가 시스템의 구조적 선택입니다.

 

세계화가 막을 내릴 때 미국이 직면한 최대 과제는 막대하게 발행된 해외 보유 국채였습니다. 탈세계화로 이 자금들이 미국 내로 대거 유입될 경우 미증유의 인플레이션이 우려되었고, 실제로 최대 채권국인 중국은 이를 무기로 삼아 국채를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교과서적인 해결책은 금리 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저소득층에게 무차별적인 긴축을 강요하고 경제 전체의 엔진을 꺼뜨리는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큰 수단입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역시 정부가 금리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하게 하는 제약 요인입니다. 이 딜레마 속에서 미국이 찾은 치밀한 패권 무기가 바로 '관세'입니다.

 

전면적 긴축을 우회하는 '표적 관세'와 달러 회수 메커니즘

 

관세 정책의 본질은 무차별적 타격을 주는 금리 인상 대신, 원하는 대상만을 정밀 타격하는 통화·무역 긴축 수단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 국채 흡수와 재정 확충: 만성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정부는 관세 수입을 통해 세수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채를 매입·상환함으로써 시중의 달러 유통량을 자연스럽게 줄입니다.

 

  • 정치적 무기화: 미국 내 자국 산업을 보호함과 동시에, 중국을 위시하여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국가들'에만 핀셋 형태의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습니다. 자국 민생 전체에 고통을 주는 금리 인상과 달리, 외부에 부담을 지우면서 자국 내 입지를 다지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 것입니다.

 

유가 제어와 지정학적 봉쇄가 만드는 인플레이션 방어막

 

관세 부과가 가져올 내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에 대한 방어막은 '에너지 패권'을 통해 구축됩니다. 미국 내 원유 채굴 장려 정책은 공산품 가격 상승분을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상쇄시키는 핵심 축입니다.

 

  • 대중국 에너지 공급망 차단: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 압박을 통해 시장에 석유 공급을 늘리는 한편, 그동안 암암리에 싸게 원유를 수입하던 중국의 우회로를 차단합니다.

 

  • 장기적 해상 봉쇄 전략: 이란 관련 분쟁 역시 미국 국민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지상군 파병을 철저히 배제한 채, 해상 봉쇄 위주의 장기전으로 치르고 있습니다. 이는 이란으로부터 저가 원유를 공급받던 중국을 지속적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중동 내 반(反)이란 연합이 안착하는 시점에 제재를 풀어 석유를 시장에 푸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부활한 슈퍼 301조와 한국이 직면한 30년 수축 사회

 

이러한 관세 중심의 경제 질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최소 10년 이상 지속될 장기 패러다임입니다. 1960~90년대 전 세계를 지배했던 통상 압력 수단인 '슈퍼 301조'의 부활과, 자유무역을 이끌던 WTO 체제의 해체는 우리가 과거 90년대 이전의 관세 일반화 시대로 회귀했음을 증명합니다.

 

  • 규모의 경제 해체: 세계화 시대에는 거대한 글로벌 시장을 바탕으로 고정비 비율을 줄이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했습니다. 기업, 정부, 개인 모두에게 호시절이었던 이 구조는 이제 수축하고 있습니다.

 

  • 사회 구조의 재편과 고정비 절감: 세계화의 우산이 사라진 한국 사회는 생산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엄혹한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지출과 고정비를 줄인다는 의미입니다. 향후 국가의 역할이 위축되면서 복지, 의료, 주거, 사회안전망 전반의 재정적 축소가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다시 과거와 같은 대규모 자유무역의 번영기가 찾아오기까지는 적어도 3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다가온 당면 과제는 이처럼 수축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시스템의 고정비를 절감하고 스스로의 생존력을 증명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