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뒤 생길 '의사보호국'을 생각하며
잃어버린 주도권과 한국형 의료의 비극적 착근
의정사태 이후 한동안 한국 의료의 변화에 대한 글을 쓰고, 또 깊이 고민해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생각은 이미 글 속에 녹아 있거나 비슷한 생각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민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과연 이 사태의 끝이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날지 명확히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필수의료만 보장하는 공공의료로의 재편, 비급여 클리닉과의 양극화, 의료사고 면책 여부와 의료 이용량의 축소 등 다양한 사안들이 논의되지만, 가슴에 와닿는 명쾌한 결말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영국식의 무한 대기 체계나, 미국식의 민간 사보험 체계로의 전환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 맞지 않습니다. 특히 '당연지정제'는 정부가 전복되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가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장 효과적으로 의료진을 강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제도가 없는 외국에서는 부러워할지 모르나, 이는 곧 의료의 틀을 정부 입맛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무소불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의사들의 파업이 두려워 손대지 못했던 각종 정책들은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 유급을 기점으로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의사협회는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제3자 평론가로 보일 만큼 대응이 무력합니다. 의대 증원이라는 가장 큰 파고를 넘지 못한 후유증일 것입니다. 의사의 의료사고 내역을 공개하자는 법안 발의에 오히려 보건복지부가 의사 편을 들며 불가함을 밝히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의료 환경의 주도권은 이미 정부와 국회로 완전히 넘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당수 의사들 사이에는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고 그 결과에 정부가 책임을 져라"라는 자포자기의 기류가 팽배합니다. 지난 20년간 정부가 의사들을 상대로 겪었던 무기력을, 이제는 의사들이 똑같이 겪고 있는 셈입니다.
교권 추락의 잔혹한 데자뷔와 '의사보호국'의 아이러니
정부는 의사 정원을 대폭 늘려 비급여 수익을 줄이면, 결국 갈 곳 없는 의사들이 주 5일 당직을 불사하며 병원에서 먹고 자는 필수의료로 흘러들어갈 것이라 계산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의료사고 면책은 끝내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책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핑계로 의사 숫자가 충분히 늘어날 때까지 방치하며, 마지못해 필수의료로 넘어올 인원을 카운트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사고 면책이 없는 필수의료는 연봉이 10억 원이 되어도 단 한 번의 사고로 5년에서 10년 치 번 돈을 날리고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위험지대입니다. 사고의 무서움을 아는 의사들은 절대 필수의료에 손을 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혈기왕성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젊은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들었다가, 형사고소와 파산 등 갖은 고초를 겪고 현장을 떠나는 비극이 반복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최근 교육 현장의 교권 추락이었습니다. 교사와 의사는 국가의 강한 통제를 받으며 숭고한 도덕적 프레임이 씌워진다는 점에서 매우 닮아 있습니다. 과거 교사는 체벌과 촌지 등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받았으나,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 김영란법 등을 거치며 부정적 단면들이 사라졌습니다. 이는 분명한 순기능이었지만, 반대로 악성 민원과 학교폭력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최소한의 권한마저 박탈되는 역기능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명감으로 버티던 젊은 교사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비극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앞으로 의사들을 옥죄는 정책 역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환자의 권리만 우선시되면서 수술실 CCTV 설치 등 민감한 사안들이 일상화되고, 응급실 대처가 미흡하면 그 자리에서 고소가 남발될 것입니다. 진단서 오타 하나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며 소송을 걸어오는 일도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 될지 모릅니다.
교권의 사례처럼 젊은 의사들이 법정 다툼 끝에 의료현장을 떠나거나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일상화된 10년 뒤쯤이면, 복지부 내에 '의사보호국' 같은 조직이 신설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스템과 권한을 무너뜨려 현장을 피폐하게 만든 뒤, 사후약방문식으로 보호 위원회를 만드는 교권 보호의 아이러니가 의료 현장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존경마저 박탈된 일터, 그리고 국민이 치르게 될 대가
이러한 전망이 지나친 과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교육 현장에서 드러난 현실을 볼 때 의료 역시 이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워 보입니다.
미래의 의사들은 환자를 소신껏 치료할 수단과 권한은 제약당한 채, 사회적 존경마저 박탈된 '고위험 감정·육체 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교사에 대한 존경이 사라지고 단순 서비스 제공자로 취급받듯, 의사 역시 존경은 커녕 매 순간 시비와 소송 위험에 노출된 고단한 직업이 될 것입니다. 당직 등 과중한 근무 시간을 감안하면 단위 시간당 임금조차 그리 높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비극의 최종 피해자는 결국 국민과 환자가 될 것입니다. 교권이 무너진 학교에서 정상적인 학생들의 학습권이 방치되었듯, 방어 진료와 필수의료 기피가 고착화된 의료 현장에서는 정작 응급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길 위를 헤매게 될 것입니다. 병원은 정말 아플 때만 겨우 찾는 곳이자, 늘 의사와 환자 간의 날 선 대립이 이어지는 피로한 공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슬프지만 이미 교육 현장이 증명해 보인,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예측 가능한 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