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 개원 준비하는 선생님들께 드리는 글
병원 개원을 고민하시는 선생님들이 부쩍 많아진 요즘입니다. 저마다의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이미 기존의 병원 수익 구조가 무너지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봉직의로서 마주하는 한계에 답답했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개원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마음 한구석에 있을 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후배 원장님들의 숫자를 보며 '한시라도 늦으면 더 불리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조급함도 밀려오겠지요.
문득 제가 한의원 개원을 준비했던 2015년도가 떠오릅니다. 당시에도 주위에서 개원을 말리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추나와 첩약이 보험 영역에 들어있지 않던 시절이라 실손 보장은 꿈도 꾸기 어려웠고, 비급여의 핵심인 한약 처방 건수마저 정체되어 있어 참 암울해 보였던 시기였습니다. 오죽하면 병원을 돌던 의료기기 판매상조차 제게 "원장님, 요즘 개원 안 해요"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니까요.
앞으로의 10년, 자본 싸움과 동네병원의 구조조정
어느 정도 감지하고 계시겠지만, 앞으로의 10여 년간 개원 시장은 철저하게 '자본 싸움'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의 정부 정책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병을 키우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수술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각종 검사료를 낮추고 진찰료를 높인다고는 하지만, 진료 1건당 결국 검사료로 원가 이하의 수가를 보전해 오던 기존 구조를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는 결국 "검사 기기 크게 가져다 놓고 대형화하지 말고, 작게 쪼개어 운영하라"는 무언의 압시나 다름없습니다. 피부미용을 포함한 비급여 시장은 지금도 이미 포화 상태이지만, 증원된 인력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는 순간부터는 가격이 거의 원가에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개원 신화'는 사실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 온몸을 갈아가며 일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유산입니다. 소득은 증가하는데 공공 영역의 보장성은 낮으니, 국가가 민간 의료기관들을 당연지정제라는 굴레로 묶어둔 채 이뤄낸 결과물이었죠. 병원 문턱도 못 밟아보고 죽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3분 진료와 상대적으로 높은 검사 수가를 묵인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드러난 건강보험의 한계는 세계화 바람과 함께 찾아온 저금리 기조 속에서 '실손보험'이라는 완충재로 메꿔왔습니다. 국가가 더 많은 검사와 치료를 보장해야 하는 게 지상과제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보장성 강화'가 단골 멘트로 등장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히 그 반대의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엄연한 선진국이 되었고, 국민들의 전반적인 영양과 생활 수준이 높아져 막상 젊고 건강한 중장년층은 병원 갈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갈 사람은 줄어드는데 병원은 유지해야 하고 건강보험 수가마저 낮으니, 그동안 개원가는 도수치료를 위시한 실손보험과 피부미용 같은 비급여로 적자를 메우며 버텨왔습니다. 정부는 이 시점에서 동네병원의 개수를 줄이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필수 의료를 내세우지만, 알맹이를 보면 1차 의료기관의 숨통을 조이는 모양새입니다. 개원가에서 체감하는 타격은 상상 그 이상일 것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예방과 수술로 나뉘는 의료
1차 동네병원의 문턱이 높아지고 수가 적자가 누적되면 환자들의 의료 이용 행태도 변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조금만 아파도 건강보험만으로 자주 병원을 찾았고, 병원 역시 비급여나 실손으로 그 적자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노인정액제로 운영되는 동네병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건강보험 치료는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급여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환자들의 지갑이 닫히며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고, 실손보험은 다들 아시다시피 점차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예전에는 환자를 받으면 어떻게든 병원이 굴러가고 조금이라도 남았지만, 이제는 첫 달부터 마이너스를 걱정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기형적인 구조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병원에 자주 안 가도 별문제가 없어 보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두 부류의 환자로 극명하게 나뉘게 될 것입니다. 질병을 미리미리 관리할 여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해 병을 키우다가 결국 수술을 받고 몸조리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두 부류 다 생존율 자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지 몰라도, 삶의 질이나 사회적 활동 수준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즉, 일상적인 건강관리, 예방 및 노화 방지(피부미용 포함)에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소비력 있는 환자층과, 국가가 보장하는 수술을 겨우 받을 정도로 몸이 악화된 생활 형편이 넉넉지 않은 환자층으로 시장이 양극화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과거의 방식대로 건강보험, 실손, 비급여를 모두 아우르는 잡화점식 구조로 병원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금흐름 측면에서 이는 결코 좋은 선택이 되기 힘듭니다. 여러 원장의 자본을 합치거나 집안의 도움을 받아 덩치를 키워야만 겨우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낮은 수가도 문제지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치솟는 인건비와 고정비가 원장님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세 번째 개원을 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때로는 원장님의 타고난 운이나 얘기치 못한 시대적 타이밍이 맞물려 엄청난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10년 전에도 개원은 끝물이라고 했지만, 그 와중에도 보란 듯이 성공한 원장님들은 늘 계셨으니까요. 그래서 개원을 밤낮으로 고민하는 후배 원장님들에게, 뻔한 훈수보다는 결국 이 한마디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고 싶으면 해야지."
막상 개원을 앞두게 되면 무언가에 홀린 듯 '나는 잘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게 현실이고, 그 에너지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맞습니다. 다만, 선배로서 여기에 현실적인 조언 한 마디만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앞으로 상당 기간은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것'과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남는 돈이 별로 없더라도 권리금을 받고 병원을 넘기는 양도양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폐업 비용을 들여 그냥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만약 제가 다시 돌아가 세 번째 개원을 하게 된다면, 저는 개원이라는 행위를 제 여러 멀티잡(Multi-job) 중 하나로 포지셔닝할 것 같습니다. 이제 개원 하나에 내 모든 인생과 자산을 걸고 원하는 전부를 얻어내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진료 외에도 여러 가지 비즈니스나 연구를 병행하는 구조를 만들 것입니다.
병원 형태도 완전히 바꾸겠지요.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하면서, 비급여와 비대면 중심, 그리고 실손 보장이 가능한 치료 위주로 세팅할 것입니다. 병원 규모는 최대한 줄여 고정비 부담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고, 직원 없이 저 혼자 하거나 많아야 믿을 만한 직원 1명 정도만 두는 콤팩트한 모델을 선택할 것입니다.
나만의 100명을 볼 수 있는 단단함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부푼 꿈을 안고 개원을 준비하시는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개원은 인생과 같아서 정말 답이 없습니다. 남들이 다 말리는 하급지 골목골목에서 전국구 맛집 같은 병원이 나오기도 하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강남 한복판 상급지에서 겉만 화려한 채 적자에 허덕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하고 싶으면 해야지"에 한 마디만 더 얹으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원장님 스스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하루에 환자 100명이 몰려와도 기쁘게 볼 수 있는 병원을 만드십시오."
과거에는 억지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몸을 갈아 넣으면서 환자 수를 늘리는 게 미덕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원장님만의 고유한 색깔과 스타일에 맞는 환자, 즉 남들은 다루기 힘들어하지만 '나만큼은 편안하고 즐겁게 짚어낼 수 있는' 환자 군을 확보하는 것이 오랜 시간 지치지 않고 내 병원을 지켜내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될 것입니다.
불안하고 외롭겠지만, 원장님의 직관과 체력을 믿고 묵묵히 걸어가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