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전쟁의 숨은 전선: 동물 실험의 종말과 바이오 패권
전선 뒤의 격전지: 중국 기초과학의 눈부신 부상과 '미병'의 격세지감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이 끝나가고 있음에도, 미·중 갈등은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되려 이란 다음은 중국과의 갈등일 수 있다는 예측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1도련선에 해당되는 일본, 한국, 대만, 필리핀과의 동맹 관계 강화와 같은 가시적인 정치·군사적 긴장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 패권 또한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앞으로 새로운 기술 패권의 각축장이 될 생물학 연구개발 및 신약 산업에서의 패권 전쟁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은 기초연구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라 언론 보도가 잘 되고 있지 않지만, 근 10여 년간 기초과학 분야에서 중국의 존재감은 단순히 커졌다거나 눈에 띄게 되었다 정도가 아닌, '괄목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과거 가짜 논문 취급을 받던 중국 연구팀의 연구 결과들은 어느새 생물학 분야 최고의 학술지인 Nature, Cell, Science에도 적지 않은 수로 포진해 있습니다.
제가 놀란 것 중 하나는, Cell의 면역학 자매지인 Immunity의 저자 이름에 영어뿐만 아니라 간체자로도 병기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 한·중·일이 전통의학에서 공유하는 개념인 '미병(未病)'에 대한 논문을 쓸 때, 저널에는 한자가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해서 뺐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격세지감입니다. 그만큼 중국의 기초과학 발전과 영향력의 확대는 심상치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중국 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천인계획'으로 불리는 각국 최고 과학자들의 영입도 포함하며, 아직 서구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로 엄청난 수의 실험을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여 연구 결과를 내는 전략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생물학 분야에서 동물 실험과 같이 노동집약적인 연구에서는 중국의 전략이 빛을 발합니다. 유전체 분석도 가장 많이 하는 국가다 보니, 동물 실험과 유전체 분석이 결합된 연구 논문들을 쏟아내고 있으며, 여기에는 기존의 기초과학 강국이었던 유럽이나 미국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해당 연구 방법은 일정 수준의 재료비만 충당되면, 나머지는 수많은 연구원의 노동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신약 패권을 향한 미국의 반격: 동물 실험 폐지와 NAMs의 등장
문제는 이런 차이가 단순한 기초과학의 차이로만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생물학의 기초연구는 산업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기전을 밝히는 과정 하나하나가 신약의 단서를 제공합니다. 새로운 단백질이나 유전체가 특정 질환에 관여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를 대상으로 약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의약품 규제기관에서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이전에 반드시 동물 실험 결과를 제시하도록 하였습니다. 흔히 '전임상'이라고 하는 단계인데, 사람 대상 임상시험이 백억 원을 우습게 알 정도로 워낙 대규모로 진행되다 보니 묻힌 감이 있지만, 전임상에서 좋은 효과를 내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됩니다.
여기에서, 중국의 기초과학 발전을 단순히 인류의 진보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도 생물학 기초과학 분야는 중국의 발전 속도가 신경 쓰이는데, 이를 방치하면 그 다음은 신약 산업에서의 중국의 약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군사적 갈등이나 인공지능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느낌은 있지만, 중국이 신약 산업까지 차지하게 된다면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국가 경제의 쇠락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조업이 쇠락한 유럽에서 그나마 선진국 행세를 해주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제약산업이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중국 내 생명공학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과 같은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의 강점인 '동물 실험 중심의 연구개발'을 차단하는 관점에서 최근 미국 FDA는 신약 허가 시 동물 실험 결과 제출 의무를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컴퓨터 시뮬레이션(In-Silico)이나 오가노이드 등으로 대체하는 규제 전환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신규 접근 방법론(NAMs)'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는 10여 년 전부터 제시된 개념이었다가 이제서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변화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과학적 방법론의 선택이 아니라 미·중 갈등, 더 나아가 세계 패권과 연결된 철저한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제약회사들이 미국의 높은 약가를 보고 연구개발을 하기 때문에 미국의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 바이오의 냉혹한 현실과 10년 뒤를 바라보는 연구자의 과제
아직 한국은 반도체가 살아 있다고 보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제약산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부도, 국민들도 시큰둥한 편입니다. 되려 신약이 나오면 "비싸서 아픈 사람을 못 치료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정부는 아예 신약을 도입하지 않다가 한창 뒤에 복제약이 풀릴 때쯤 약가를 책정하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반도체가 앞으로도 잘 되기를 바라지만, 모든 산업에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한국도 제약산업에 대한 노력을 점점 늘려가는 추세이고, 결국 미국 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결국 동물 실험 일변도의 연구보다는, 인공지능과 오가노이드 등을 활용하여 앞으로 바뀔 신약 개발 절차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아직 한국이 여기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학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연구자들과, 그중에서도 신약 개발에 관심이 있는 일부에게만 중요하게 다가올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10년 정도 지나면 은퇴를 할 연구자들은 이 변화에 바로 대응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과학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과학적 방법론의 전환 속도는 꽤 느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년 뒤를 바라보고 지금 연구를 배우며 자신만의 연구 분야를 설정하려는 생물학 분야의 신진 연구자들이라면, 지금의 추세 전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논문은 과학적이지만 논문 심사는 과학적이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과학의 방법론 역시 언제나 과학 외적인 패권과 정책의 영향 속에서 변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