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기업가와 기술마스터 : 미래의 교수는 어떤 모습일까?
교수라는 직업의 확장과 피로
대학의 교수님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강의는 기본이고 연구에 심지어 행정까지 도맡아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교수는 강의가 중심이고 연구는 필요에 따라 수행했습니다. 행정은 학장이나 학과장과 같은 보직의 일환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교수 임용은 테뉴어가 기본이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테뉴어가 당연한 시대도 아니며, 테뉴어라 할지라도 강의와 연구, 행정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창업을 장려하는 학교라면 사업까지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대학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발표에 따르면 2050년이면 연구팀을 꾸릴 수 있는 대학이 20개 남짓에 불과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연구 중심 대학은 약 30개 정도인데, 대학원생이 부족해 연구팀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전망은 오히려 낙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발전은 교육 환경 자체를 바꾸고 있습니다. 맞춤형 강의, 24시간 반복 수강, 언제든지 가능한 질문 응답은 기존 강의가 갖기 어려운 장점입니다. 강의라는 형식 자체가 더 이상 대학 교육의 필수 요소가 아닐 수도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강의 중심 교육에서 실습 중심 교육으로
한때 미국식 대학교육이 이상적인 모델로 이야기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미리 공부해 오고 강의 시간에는 질문과 토론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교수뿐 아니라 시간강사로 불리는 파트타임 교수진이 충분했기 때문에 학생의 의지만 있다면 강의를 통해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등록금이 장기간 동결되면서 교수 숫자를 늘리기는 어려워졌고, 마침 인공지능이 강의를 상당 부분 대신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AI를 통해 이론을 미리 학습하고, 대학에서는 질문과 토론 혹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형태가 가능해졌습니다.
어쩌면 질문과 답변조차 필수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실험과 실습, 현장 경험이 대학 교육의 핵심 역할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의 성격 자체를 바꿉니다. 이전에는 강의 전달력이 부족해도 연구 성과나 학술적 업적으로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실습을 이끌고 기술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중세 길드의 도제 시스템과도 유사합니다. 기술은 문서로 전달되는 지식만으로 완전히 배울 수 없고, 숙련된 사람의 작업 과정을 통해 익히는 암묵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래 대학 교육에서 교수는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자가 아니라 기술을 전수하는 장인에 가까운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구기업가와 기술마스터의 대학
이러한 환경 변화는 현재 교수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이 분화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대학원생 감소는 연구팀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연구실은 석박사 교육 중심의 조직에서 벗어나 박사후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소형 연구소 형태로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이미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해당기관들은 정부 출연금이 있어 인건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대학 연구팀은 과제를 수주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구조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연구팀이 창업을 통해 기술사업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진입해 기업 가치를 높인 뒤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부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대학 입장에서도 연구팀이 확보한 과제의 간접비는 중요한 재원이 됩니다.
결국 대학은 두 가지 형태의 교수 역할로 분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연구비를 확보하고 연구팀을 운영하며 기술사업화를 추진하는 연구기업가형 교수 (Research Entrepreneur)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습 교육과 기술 전수를 담당하는 기술마스터형 교수 (Technical Master)입니다.
지금까지 대학은 강의, 연구, 행정, 창업까지 모두 수행하는 멀티플레이어형 교수를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등록금 동결로 처우는 정체된 반면 역할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과 대학원의 축소는 연구 기능의 전문화를 더욱 촉진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대학이나 연구팀은 도태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남은 대학은 연구기업가 교수가 이끄는 연구실과, 기술마스터 교수가 실습 중심 교육을 진행하는 강의실로 점차 나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