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자격: 어떤 세계를 만들고 싶은가
최근 글에서 저는 한국이 강대국과 선진국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국가의 방향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자원의 배분만 변화하는 사회는 안정적일 수는 있어도 역동적인 사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선진국이 되자는 국가적 목표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한국인들은 충실하게 따라갔고, 마침내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그 다음을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드파워를 넘어선 '질서 설계자'로서의 소프트파워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하드파워가 필요합니다. 제가 앞선 글에서 강조했듯 생산성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기능할 만큼 높아야 하며, 에너지 자립 역시 필수적입니다. 또한 강대국은 외부에 자신의 의지를 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지금처럼 모든 국가와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분쟁을 각오하는 일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의 석유 공급을 제한과 최근 미중간의 희토류 분쟁처럼, 자립의 근간을 흔드는 도전은 강대국이 흔히 겪는 일이며, 이에 대응해 에너지를 조달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적입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소프트파워입니다. 힘만으로는 다른 나라를 이끌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소프트파워는 문화적 매력에만 치중했을 뿐, 국제 질서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강대국에 대응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세계 질서의 밑그림을 그리는 주도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합니다.
제국주의의 유산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 청사진
지난 백여 년간 세계 질서를 규정했던 국가들은 모두 제국주의 국가들이었습니다. 영국과 일본, 미국이 그러했고, 현재의 중국도 제국주의적 성격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지배와 피지배를 엄격하게 나누고, 그 결과 피식민국의 고통은 이루 말로 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인들은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힘도 없는데 무슨 '세계질서' 같은 망상을 하느냐며 스스로를 억눌러 왔고, '강대국이 되었을 때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사회가 한국에 역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의 아픔을 공유하는 한국의 역사적·문화적 유산은 기존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전혀 다른, '지배가 아닌 공존'의 새로운 질서를 제안할 수 있는 강력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강대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제는 스스로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내부의 제로섬 경쟁을 넘어 강대국으로 나아가는 비전
앞으로의 몇 년은 우리가 선진국임을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절감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강대국이 된다는 것은 생산성의 극대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내부의 계층 분화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세계 각국의 분쟁을 조정하고 우리가 만든 질서를 책임감 있게 수호하는 일을 맡는 것입니다. 이는 남북 대치를 넘어,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징병제와 같은 국가적 자원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성장이 정체된 파이를 두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근대적인 제로섬 경쟁입니다. 이런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세계가 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인구 절벽의 위기를 AI와 기술을 통한 생산성 혁신으로 돌파하고, 이를 통해 인류 공통의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는 모습이 그 비전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비전에 다른 나라들의 동의를 얻는 것에서 한국이 강대국이 되는 첫걸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아래는 서울대학교 이근 교수님의 강대국으로서의 한국에 대한 인터뷰 진행 내용입니다. 많은 인사이트가 있어서 추천드립니다.)
https://youtu.be/13qAiotE5HQ?si=KJPa6CPxkmLbIw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