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라는 도달점, 강대국이라는 갈림길: 한국 사회의 실질적 불안에 대하여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한국이 발전의 정점을 지나 쇠퇴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한국전쟁이나 IMF 외환위기 같은 극단적인 고통의 시기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지금보다 더 강력하고 번창하는 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 많은 이가 동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하드파워, 그리고 K-Pop으로 대표되는 소프트파워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구조의 붕괴를 목격하며 정체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빠른 성장을 일궈냈음에도 우리를 덮고 있는 이 어색하고도 실질적인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선진국의 달성과 강대국의 신기루 사이에서
이러한 불안의 기저에는 우리가 '선진국'과 '강대국'을 동일시하거나 혼재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인식의 괴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 선진국이 반드시 강대국인 것은 아니며, 강대국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가 꿈꾸는 선진적인 체제를 갖춘 것도 아닙니다. 전자가 북유럽 국가들의 모델이라면, 후자는 중국의 사례에 가깝습니다.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사회적으로 평등하고 풍요롭게 잘 사는 나라, 즉 '선진국과 강대국이 결합된 이상적 형태'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며, 존재감의 이면에는 가혹한 유지비용이 따릅니다. 최근의 의료 갈등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접근성을 저비용으로 누려온 K-의료라는 성장기 모델'이, 선진국형 분배 논리와 충돌하며 내는 파열음입니다. 당장 선진국으로 사는 것조차 쉽지 않은 데, 강대국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논리가 작동합니다.
부국강병의 근간: 압도적 생산성과 노동자 계층
역사적으로 소위 '강대국'이라 불렸던 나라들은 예외 없이 압도적인 생산성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많은 인구를 부양할 농업 생산력이 국력이었고, 이후에는 공업 생산력이 세계 질서를 재편했습니다. 영국,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이 차례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자처하며 패권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생산성을 뒷받침할 공고한 노동자 계층(Working class)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세계의 공장으로서 기능할 준비가 되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과거 우리에게도 세계의 공장 중 하나이던 시기가 있었지만, 민주화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거치며 한국 사회는 '노동자 계층'을 '시민 계층'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이는 서유럽 선진국들이 걸어간 길과 궤를 같이합니다. 만약 우리가 강대국, 더 나아가 초강대국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통일이나 이민을 통해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체제 자체가 그러한 계층 구조를 용인하고 인정하는 방향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난관을 맞이하게 됩니다.
중견국의 시민인가, 초강대국의 노동자인가
이제 우리 앞에는 잔인하지만 명확한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습니다.
첫째는 ‘성숙한 중견국의 평등한 시민’으로 남는 길입니다. 이 길은 저성장과 장기 침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도 시민적 가치와 보편적 복지 시스템을 수호하는 데 집중합니다. 사회 안전망을 지탱하기 위해 십수 년 이상 국가 부채의 압박을 견뎌야 할 수도 있으며,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가 ‘효율’보다 ‘형평’에 놓이게 됨에 따라 개인이 폭발적인 부를 축적할 기회는 제한될 것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규범적인 존재감은 가질 수 있겠으나,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타국에 일방적인 영향력을 투사하는 강대국으로서의 전략적 자율성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초강대국의 노동자’가 되는 길입니다. 이 모델은 국가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하며, 이를 위해 엄격한 계층 구조와 무한 경쟁을 사회적 상수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공동체가 감내해야 할 비용이 됩니다. 그러나 국가가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른다면, 비록 개인은 시스템의 부품인 ‘노동자’로 살아갈지라도 전 세계 어디서나 강대국 시민이라는 유무형의 프리미엄과 권위를 누리게 됩니다. 폐쇄적인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 국가의 팽창된 영향력을 발판 삼아 전 지구적 범위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길의 핵심입니다.
이상적으로 '초강대국의 존경받는 시민'이 되기를 꿈꾸지만, 역사는 그것이 제국의 중심부에 위치한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습니다. 강대국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는 그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묵묵히 생산에 종사해야 하는 거대한 노동자 계층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선택의 시간: 우리가 감당할 미래의 무게
결국 한국 사회가 느끼는 답답함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 데서 옵니다. 단순히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목표는 이미 달성되었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저성장 사회의 시민'으로서 내실을 다질 것인지, 아니면 '불평등을 감수한 생산성 향상'을 통해 강대국으로서의 길을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어느 쪽도 편안하거나 이상적인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직시하는 것만이 이 실질적인 불안을 해소할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