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약리학

[NP 저널미팅 #6] 유전자 변이 없이도 약이 듣는 이유: 'NetBID'가 찾아낸 LCK 네트워크 (Gocho et al., 2021 리뷰)

상계동백곰 2025. 11. 20. 19:11

이번에 리뷰할 논문(Gocho et al., 2021)은 네트워크 약리학을 활용하여 유전적 변이가 없는 상태에서도 약물의 반응성을 예측하고 새로운 기전을 밝혀낸, '시스템 약리학(Systems Pharmacology)'의 기념비적인 연구입니다.

특히 'NetBID'라는 독자적인 네트워크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단순한 유전자 발현량(Expression)이 아닌 숨겨진 드라이버의 활성(Activity)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 배울 점이 매우 많습니다.


1. 🧐 이 논문을 선택한 이유

보통 암 치료제는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예: BCR-ABL 융합)를 표적으로 개발됩니다. 그런데, 그런 돌연변이가 없는데도 약이 기가 막히게 잘 듣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이 논문은 소아 T세포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T-ALL) 환자들에게서 백혈병 치료제인 '다사티닙(Dasatinib)'이 ABL 유전자 변이 없이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NetBID'라는 데이터 기반 네트워크 추론 알고리즘을 적용했습니다.

유전적 변이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활성' 관점에서 약물 반응성을 해석한 이 연구는, 복합 성분으로 구성된 한약이나 천연물의 작용 기전을 규명하는 데에도 큰 영감을 줍니다.

2. 📝 논문 정보

  • 논문 제목: Network-based systems pharmacology reveals heterogeneity in LCK and BCL2 signaling and therapeutic sensitivity of T-cell acute lymphoblastic leukemia
  • 저자: Yoshihiro Gocho, Jiyang Yu, Jun J. Yang et al.
  • 저널: Nature Cancer (2021) 2:284–299
  • 링크: https://doi.org/10.1038/s43018-020-00167-4

3. 💡 3줄 핵심 요약

  1. 배경 (Problem): T-ALL 환자의 약 30~40%는 다사티닙(Dasatinib)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기존에 알려진 표적(ABL 융합 유전자)이 없어 그 기전이 불명확했습니다.
  2. 방법 (Method): 환자의 약물 반응성 데이터와 전사체(RNA-seq) 데이터를 결합하고, 'NetBID'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유전자 발현량이 아닌 '숨겨진 단백질의 활성(Activity)'을 추론했습니다.
  3. 결과 (Finding): 다사티닙 반응성을 결정하는 핵심 드라이버는 'LCK 키나아제'의 과도한 활성임을 밝혀냈으며, 이는 T세포 발달 단계(DN3) 및 BCL2/BCL-XL 활성과 밀접하게 연관됨을 증명했습니다.

4. 🔬 연구 내용 상세 분석

A. 1단계: 현상 발견 - 유전자 변이 없는 약물 감수성 (Pharmacotyping)

연구진은 352명의 ALL 환자 샘플을 대상으로 생체 밖(ex vivo) 약물 반응성을 테스트했습니다.

  • 놀라운 결과: 소아 T-ALL 환자의 44.4%가 다사티닙에 높은 감수성을 보였습니다.
  • 의문점: 다사티닙은 본래 BCR-ABL1 융합 유전자를 타겟으로 하는 약인데, 이들 T-ALL 환자에게서는 해당 융합 유전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B. 2단계: NetBID를 이용한 '숨겨진 드라이버' 발굴 (Systems Pharmacology)

이 논문의 핵심 방법론입니다. 단순한 차별 발현 유전자(DEG) 분석으로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기에, 연구진은 NetBID (Network-based Bayesian Inference of Drivers)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 원리: 전사 인자나 신호전달 분자(Hub) 자체의 발현량이 변하지 않더라도, 그 하위 타겟 유전자들의 발현 패턴을 보면 상위 조절자의 '활성(Activity)'을 역추적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 과정:
    1. T-ALL 특이적 상호작용 네트워크(Interactome)를 구축 (SJARACNe 알고리즘 사용).
    2. 약물 반응군 vs 비반응군의 네트워크 활성을 비교.
  • 결과: 다사티닙 반응군에서 'preTCR 신호 전달 경로'와 'LCK'의 활성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LCK 유전자 자체의 발현량이 아니라, LCK가 조절하는 네트워크의 활성이 높았음).

C. 3단계: 다각적 검증 (Wet-lab Validation)

NetBID로 예측한 'LCK 활성'이 진짜인지 다각도로 검증했습니다.

  • 인산화 단백질 분석 (Phospho-proteomics): 실제로 반응군에서 LCK와 그 하위 단백질(ZAP70 등)의 인산화(활성)가 매우 높음을 확인했습니다.
  • CRISPR 스크리닝: 유전자가위로 유전자를 하나씩 제거해 본 결과, T-ALL 세포의 생존에 LCK 유전자가 필수적임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암세포에서는 그렇지 않음).
  • 동물 모델 (PDX): 환자 유래 모델 쥐에게 다사티닙을 투여하자 백혈병 진행이 억제되었습니다.

D. 4단계: 발달 단계와 치료 전략의 연결 (Development & Heterogeneity)

  • 발달 단계: LCK 활성이 높은(다사티닙에 잘 듣는) 암세포는 T세포 발달 과정 중 DN3 단계에 멈춰 있었습니다.
  • 역상관 관계 (Inverse Correlation): 반면, LCK 활성이 낮은(다사티닙 내성) 암세포는 ETP 단계에 속하며, 이때는 BCL2 활성이 높았습니다.
  • 치료 전략: 따라서 LCK 활성이 높으면 다사티닙을, LCK가 낮고 BCL2가 높으면 베네토클락스(Venetoclax, BCL2 억제제)를 쓰는 맞춤형 치료 전략이 가능해집니다.
  • 단일 세포 분석 (scRNA-seq): 하나의 종양 안에서도 어떤 세포는 LCK 활성이 높고, 어떤 세포는 BCL2 활성이 높은 '이질성(Heterogeneity)'이 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5. 💭 나의 '셀프 미팅' 노트

  • 이 논문의 기여점 (Contribution):
    • "Expression ≠ Activity": 유전자 발현량만으로는 생물학적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으며, 네트워크 기반으로 '활성'을 추론해야 진짜 드라이버를 찾을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 NetBID의 유용성: 유전적 변이가 뚜렷하지 않은 질병이나, 기전이 복잡한 천연물 연구에 NetBID 같은 네트워크 분석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입증했습니다.
    • 정밀 의료의 확장: 유전자 돌연변이 유무(Genetics)를 넘어, 신호 전달 네트워크의 활성 상태(Signaling state)를 기반으로 약물을 처방하는 새로운 정밀 의료의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 나의 연구/공부와의 연결고리 (My Takeaway):
    • 한의학 연구에의 적용: 한약 처방은 수많은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단일 성분의 타겟을 찾는 것보다, "이 처방을 복용했을 때 환자의 생체 네트워크에서 어떤 '허브(Hub)'의 활성이 조절되는가?"를 NetBID와 같은 방식으로 역추적한다면, 한약의 시스템적 효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큰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 전사체 데이터의 재해석: 이미 확보된 RNA-seq 데이터가 있다면, 단순히 DEG만 볼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숨겨진 상위 조절자를 찾아보는 시도를 해봐야겠습니다.

6. 🎯 결론 및 한 줄 평

"유전자 발현량 뒤에 숨어있던 진짜 범인(LCK 활성)을 '네트워크 분석'이라는 탐정(NetBID)을 통해 검거하고, 백혈병 치료의 새로운 지도를 그린 명작."